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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인은 사물을 맥락과 관계 속에서 의미가 재구성되는 아티팩트로 바라보며, 그것들의 상태가 재발견되는 지점을 포착한다. 그리고 변증법적 흐름을 따라 시간의 경계를 넘어 끊임없이 변화하는 정의로 확장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가변적인 위계 속에서 내가 여기에 존재하는 방식을 탐색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리듬과 구조는 시각 언어가 되며, 이를 통해 불가피하고 수수께끼 같은 세계의 시스템 가운데서도 우리가 유동하는 정의를 바탕으로 공생하며 새로운 연결망을 발견할 가능성을 제안한다.

 

세상과 나를 연결하기 위해 나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사랑은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고 그 과정에서 누가 살아가고 있는지, 사회는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관찰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상 속에서 접하는 사람과 사물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 곁에 늘 존재했지만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들과 맺는 관계가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알고 보니 우리는 이미 연결되어 있었고, 어쩌면 오래전부터 서로를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감각에서 출발한 작업은 사물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된다. 나는 사물을, 그것이 존재하는 맥락과 관계 속에서 의미가 지속적으로 재정의되는 아티팩트로 바라본다. 고정된 기능이나 가치에 갇힌 고립된 개체로 다루기보다는, 다양한 층위의 역사와 내재된 서사, 배치된 방식과 장소에 따라 정체성이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존재로 접근한다. 특히 사물이 가시성과 비가시성, 중심성과 주변성 사이를 오가는 방식을 주목하며, 이러한 이동이 고정되어 보이는 위계나 분류 체계의 불안정성을 드러내는 방식에 관심을 둔다.

 

정의와 재정의가 끊임없이 맞물리는 변증법적 흐름 속에서, 나는 사물들이 선형적인 시간 개념을 넘어서는 방식, 그리고 어떻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의미 생성의 역동적인 체계 속에 편입되는지를 탐색한다. 이는 단순히 사물의 존재론적 성질을 다루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가치와 기능, 중요성에 대한 사회문화적 인식이 형성되는 구조에 대한 비판적 질문으로 확장하며 그 속에서 나 자신의 위치 또한 성찰한다.

 

내가 만드는 설치 구조물은 발견된 오브제나 산업용 목재, 철제 등 우리 주변을 이루는 재료들로 구성된다. 이들은 개입과 재구성을 거치며 새로운 맥락 속에서 재탄생한다. 나는 이러한 구성 방식을 통해 겹겹이 쌓인 의미 구조와 형식이 만들어내는 리듬 속에서 새로운 의미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 설치물들은 하나의 시각 언어로 기능하며, 형태와 긴장, 균형이 만들어내는 문법을 통해 관객이 사물뿐 아니라 그것들 사이의 간극과, 그 간극이 암시하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과의 관계까지도 함께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나는 분명한 결론보다는 불확실성과 전이, 공존의 상태를 드러내는 작업을 지향한다. 복잡한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나의 작업은 인식과 소통의 대안적 방식을 상상하는 사유의 공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 공간에서는 차이가 분열의 근거가 아니라 연결의 기반이 되며, 나는 이러한 조각적 만남을 통해 주체와 객체 사이의 새로운 관계 가능성을 열어 보이기를 바란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사물에 스며든 과거의 시간과 감각, 축적된 의미의 흔적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우리 안에 깊이 뿌리를 내렸던 의미의 파편은 해석을 거치면서 또 다른 정의로 향한다. 이러한 시선에서 바라본 사물과 그것의 인식 체계에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정반합의 과정을 통한 수많은 축들로 연결되어 있다. 과거에서부터 시작된 오랜 지식, 경험과 물질들이 축적된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한 무수한 정의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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